20081028 - 100%의 추진력

1. 집안일
어머니가 서울 동생 있는데 가셔서 하루 자고 오신다 한 덕에, 어제 저녁부터 좀 바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거 없는 일이긴 한데 평상시에 안 하던 게 내 책임으로 맡겨져 있다는 거 자체가 심적으로 꽤 부담이 된다.
오늘 아침도 그래서인지 6시 45분에 눈이 반짝 떠졌다. 청소기 돌리고 아침상 차리고, 할 일이 많았으니까. 거기다 수업은 9시고.
사실 청소래봤자 청소기 돌리고, 아침도 있는 반찬 꺼내고 데우고 하면 되는 거라 아버지가 하셔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어쩐지 내가 해야 될 거 같은 거다. 묘한 책임감이랄까.

아침에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라도 어머니 오시니까 너무 좋다는 동생에게 덕분에 난 일거리가 쌓였다고 농담을 하는데 동생이 그러더라. 언니 나중에 자취할 때는 일하는 사람이라도 딸려보내야 되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고.
왜 그러냐 했더니 동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언니는 방 어지르는 거 싫어서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올 사람이잖아."

사실 저 말이 너무 맞아서 반박을 못한다는 게 더 문제다. 집안일 같은 걸 못한다 못한다 하지만 막상 시켜놓으면 하기는 다 한다. (장기간의 퀼리티는 보장 못하지만, 대충 일주일 정도는 버틸만 하다) 그런데 저건 어디까지나 나 이외의 가족이 있을 때나 하는 거다. 이번도 아버지가 계시니까 아침 차려서 챙겨먹지 혼자 있었으면 80% 학교 식당으로 갔을 거다.

청소야 하지만, 먹을 거 같은 데는 그다지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라서 혼자 두면 대충대충 때우는 편이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게, 아예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도 위장이 버틴다-라기 보다는 그런 타입의 일에 대한 자원의 상대적인 분배량이 적다는 뜻이다. 음식의 질을 높일 시간에 다른 걸 하고 만다, 라는 생각이랄까. 거기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묘하게 거기서 오는 것도 좀 있다. "내가 어떻게 해도 어머니한테는 안 되니까" 포기해 버리는 거다.(적어도 지금은) 내가 꼭 해야 하는 건 제외하고. 그런 내 성격을 아는 가족들은 '저거 어떻게 혼자 내보내나' 걱정하시고. 솔직히 나도 걱정이 되긴 한다. 챙겨주는 밥도 가끔은 귀찮다 하는데 혼자 살면 오죽할까 싶어서. 한편으로는 지금은 선택이지만 그때는 생존의 문제일테니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도 싶고.


2. 추진력
일을 할 때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의 100%를 그 일에 투자해서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들이다.
성격이 어영부영한 건지, 나는 뭘 하더라도 내 100%를 투자하는 일이 없다. 공부를 할 때도 스스로에게 있는 자원의 90% 정도까지는 투자해도 나머지 10%는 항상 다른 쪽 - 주로 노는 것 - 에 투자되기 마련이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라도 놀고 싶어~!를 외치며 도피하는 거다(목요일이 시험인데 이렇게 공부하다 말고 블로그를 하는 것처럼 -_-;). 이런 태도로 성적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최상치에 못 올라서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절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물론 지금도 잘 하는 거라 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여기서 기준은 단순한 상위권이 아니라 1위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최고가 아닌 이상은 나중에 가면 다 똑같은 어중이떠중이로 취급받으니까.
우리 가족이 내게 하는 말 중 단골이 "넌 더 하면 될 텐데 왜 더 안하냐" 라는 거다. 난 저 말이 우리 부모님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나온 과대평가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도 똑같은 얘기를 듣고 살짝 놀랐다. 하면 잘 할 놈이 왜 그리 안하냐고.

보다보면 정말 머리가 '반짝반짝'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얘기를 들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이해하고, 필기 한 번 안하면서도 내용은 책 녹음한 녹음기마냥 줄줄줄 읊어대는 부류. 한 둘이 아니다. 보다 보면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자신의 100%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다. 전공 분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분야에서 무서운 건 한번 보고 다 외는 천재가 아니라 하루의 16시간을 실험실에서 버리는 시간 없이 실험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여름 방학, 랩에 잠깐 있으면서 느낀 게 하루에 16시간 실험실에 있는 거야 누구든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시간을 얼마나 알뜰하게, 제대로 쓰느냐는 그 사람의 재능이다. 100%의 추진력을 가진 사람만 그 시간을 온전히 쓰니까.

내가 100%를 투자하지 못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내 능력의 한계치다. 이걸 넘어선다면 나는 그 급의 인간이 되는거고, 아니면 영영 여기서 머물러 있는 그저 그런 인간이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컴터 끄고 공부하려 가야겠지만.

by 지소낭자 | 2008/10/29 04:19 | 일상잡상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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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Vampire at 2008/10/29 09:24
사람은 막상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_-;;;
특히나 집안일은, 자취생의 경우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서..;;;
Commented at 2008/10/29 10: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어흥 at 2008/10/29 11:36
지소님 결혼 할 때 집안일 잘하는 누군가를 덤으로 줘야하는건지;;;
어디서 봤는데 내가 이렇게 머리가 좋아도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을 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거라고 하더군요...
노력에는 100%가 투자가 없고 인간의 한계 역시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로다가 더 분발 하세요 ^^/
Commented by 그라드 at 2008/10/29 12:27
집안일 잘 하는 남자와 결혼하심 딱일 듯...

16시간 동안 100% 그 일에만 온전히 투자한다라....
와우에서 풀캐고 경매장질 하고 일일퀘하고 인던가고 레이드 돌면 그 시간 나올지도?
와우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음 다른 일에도 그렇게 집중할 수 있다고 믿는 1人
Commented by 지소낭자 at 2008/11/01 21:04
/vampire 그렇죠....닥치면 다 하게 되죠 -_;;
그러니까...청소랑 빨래는 그렇다쳐도 저는 밥해먹는 게 너무너무 귀찮더라구요;

/비공개 전 청소는 괜찮은데 빨래는....널고 개고 하는 게 싫어요. 사실 그거 빼면 세탁기가 다 알아서 해 주지만;;

/어흥 돈 열심히 벌어야 할 듯 싶어요....
아마 다른 사람보다는 노력을 더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안하기도 했으니...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라드 어디 저희 어머니 같은 남자 없을까 찾고 있습니다....ㅡ.ㅡ;;
생각해보니 와우할 적에는 그렇게 했더군요;; 그 생각 하면 정말 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Commented by Hibis at 2008/11/05 22:32
컴터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내 마음속의 오랜 광명의 횃불(.........)
Commented by 고래 at 2008/11/06 01:15
아직도 시험이신가;
Commented at 2008/11/06 09: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11/06 13: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소낭자 at 2008/11/06 21:01
/Hibis 컴퓨터 없으면 이 세상 어찌 살까 싶기도 합니다....

/고래 과제+퀴즈 = 울음바다로의 도피 ㅠㅠㅠㅠ
그저 울고 있습니다, 흑흑.

/비공개 1 학교 오면 연락하라 그래라. 하늘같으신 선배님이 밥산다고 ㅋㅋ
니 입에서 애기 애기 하니까 이상하다 -.-;; 근데 아마 담주 수요일까진 좀 바빠서; 메일이 일찍 안 가도 걱정하진 말라고 해줘-
감기는 대충 나았는데 어머니가 목소리가 코맹맹이라고 하셔서 충격받았다. 그나마 쓸만한게 목소리 하나인데 -_;;
나중에 전화하마-

/비공개 2 블로그에 답글로 남겼습니다 :)
Commented at 2008/11/06 21:02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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