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5 - 울고 싶다, 진짜.

한동안 블로그를 안했더니 친구놈이 왜 안하냐고 묻길래, 차마 글로 못 쓰는 일만 하고 있다는 말은 못하고 그저 웃지요.
솔직히 쥐 가지고 실험하는 대학원생한테야 일상이지만, 밖에서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정상인들에게 "매일 쥐 잡고 뇌꺼내고 그걸 얇게 썰어서 염색하고 사진찍고, 혹은 쥐가 있는 케이지 안에 다른 깡패쥐를 넣어서 두들겨 맞게 하고 얘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있고, 뇌에다 전극을 넣어서 전류를 흘려줘서 뇌를 자극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실험이라기보다는 쥐 고문처럼 보이잖는가. (괴롭히는 거 맞다는 게 더 뭐하지만...)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자체 필터링한 최근 근황.


1. 실험
DBS(deep brain stimulation = 뇌에다 전극꽂고 전류 흘려줘서 자극) 수술중. 지금 한 가설 증명을 위해 실험 3개(DBS, IHC, lesion)가 동시진행중인데, 그 중에서 내가 주로 하는 부분은 저 DBS이다. 수술 100마리를 하겠다! 라는 의지로 덤비고 있는데 하다보니 기술 부족으로 그 두배는 해야 할 거 같고, 거기다 연습용으로 쓰는 쥐들까지 생각하면...한 마리 하는데 두시간씩 걸리는데 언제 하지 이거.....
수술 기술은 영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 두개골에 나사 박는거도 어렵고(...) 전극 각도 맞추기도 어렵고(....) 산 넘어 산, 물 넘어 물. 집에 가서 잘려면 한숨이 푹푹 난다. 수학 문제는 가끔 꿈에서 풀린다던데, 이건 좀 어떻게 안되나...


2. 우울모드
아침부터 시험공부 어쩔 거냐는 어머니 잔소리에 기분 팍 상해서 왔는데, 도착해서 가방정리하다 밑에 뭐가 떨어져서 줍고 고개 들다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지만 순간 왈칵, 해서 울었다. 진짜 어디서 1g도 요구하지 않는 대학원 성적 따위 알 게 뭐야. 하루 12시간 이상을 랩에서 보낸다는 거, 있어본 사람이나 알겠지만 쉬운 일 아니다. 하루 종일 앉아있을 사이도 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저녁쯤에는 녹초가 된다. 거기다 실험에 쏟는 집중력은 평소 수업에 비할 바가 아니고. DBS 수술 한 번 하고 수업 들어가면 긴장이 탁 풀리면서 졸음이 쏟아진다. 교수님이야 아직 직접적으로 뭐라 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하는 거 보면 알아서 잘해야지 싶다. 기대를 해 주셨으니 거기에 보답은 해야 하잖은가.
점심에 맛있는 거 먹어서 좀 풀리긴 했는데, 이거 쓰다보니 또 울고 싶어진다. 혈당치가 떨어져서 그런가...
술이 땡기는 날이다. 마시고 잊자, 타령을 하고 싶은 날.

집에 들어갈 생각 하니 또 우울모드다. 같이 실험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나한테 뭘 하라 하면 그게 먹혀들어서 기대하고 압력을 주는 거니 얼른 집에서 독립하라는데, 진짜 그래야 하나.
아침에 두개골에 드릴질 하는 게 깔끔하게 되서 기분이 좀 풀렸는데, 애꿎은 쥐나 한 마리 더 잡아야 하나, 이거.


보통 여자들이 생리 전 증후군으로 이런 게 있는데, 나도 그런건가...모르겠다.

by 지소낭자 | 2009/10/15 19:38 | 일상잡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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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어흥 at 2009/10/16 00:50
힘내세요!
달리 해 드릴 말이... ㅠ.ㅠ
Commented by 지소낭자 at 2009/10/19 14:01
감사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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