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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받자마자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서야 쓰는군요....;;
따로 써서 옮긴 거라, 조금 딱딱할지도 모르겠네요.
<볼테르의 시계> 리뷰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cois-Marie Arouet), 혹은 볼테르(Voltaire). 서양 철학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인 볼테르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사상가이자 극작가인 동시에, 현재의 우리에게도 계몽 사상의 대표적 철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계몽 사상은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하며, 이성으로 모든 불합리를 개혁하고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던 철학 풍조이다. 영국의 명예 혁명을 뒷받침한 이 사상은 훗날 프랑스로 전해져 프랑스 계몽 사상으로 계승되며 프랑스 혁명을 태동시켰다. 몽테스키외, 루소 등 당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계몽주의를 발전, 현대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 중에서도 볼테르는 프랑스 초기 계몽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당시 지식인들간의 활발한 교류를 증명이라도 하듯, 볼테르는 일생을 통틀어 수천 통의 편지와 잡다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당시 러시아의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계몽 사상과 그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이 사회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많은 기록을 통해 복원한 볼테르의 삶에는 하나의 구멍, missing link가 있다. 1725년 3월의 3주간, 그 동안은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볼테르의 시계>는 이 3주간 볼테르가 ‘시간 여행’을 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단순한 시간 여행이 아니라, 계몽 사상의 요지인 ‘절대 이성’을 찾기 위한 시간 여행이다. 볼테르는 귀족인 쉴리 공작과 ‘절대 이성’의 존대를 증명하겠다는 내기를 하고, 이를 위해 둘은 482년의 게르만 시대, 171년의 로마 시대, 875년의 프랑크 왕국 시대로 3번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볼테르의 시계>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사상가 볼테르라기보다는 극작가이자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명인으로서의 볼테르였다. 뛰어난 두뇌를 절대 이성에 대한 고뇌보다는 날카로운 재치와 풍자에 사용하고 풍부한 감성을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달콤한 말에 더 쏟아붓는 문필가,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본 볼테르였다. 물론, 이 책에서 볼테르의 천재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로마 시대로의 두 번째 시간 여행에서 귀족들 앞에서 고전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그들을 풍자하는 볼테르의 실력과 배짱은 큰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볼테르는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쉴리 공작과의 이야기에서, 볼테르가 쉴리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던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는 개념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볼테르 그 자신이 ‘절대 이성’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귀족들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에게는 귀족이 다른 하인들을 대하는 것과 다름없이 대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의 모순. 쉴리의 말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역시 그러한 방식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동 없는 주장만큼 공허한 것은 없다. 21세기 민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명제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나에게도 볼테르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하물며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의 주장이 먹히리란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설에서 볼테르는 로마 시대와 중세 프랑크 왕국의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의 뜻에 따르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각 시대에서 볼테르가 ‘권력’을 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마 시대에서는 시레나이카의 대부호인 필로수스의 뒷받침이 있었고, 프랑크 왕국에서는 볼테르 자신이 한 영지의 후계자였다. 볼테르의 말에 따르자면, 사람에게는 ‘절대 이성’이 있기에 그 이성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면 그 누가 한 말이든 따라야 한다. 그러나, 만약 볼테르가 저러한 뒷받침을 얻지 못하고 개인으로서 그러한 주장을 했다면 사람들은 그에 따랐을 것인가? 내 답은 ‘아니오’다. 쉴리 공작의 말처럼, 볼테르의 이상은 현실을 알지 못하는 ‘시인 나부랭이의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쉴리 공작은 사람들이 무엇에 따라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을 다스리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에, 볼테르의 어설픈 이상주의를 냉혹하게 비웃었던 것이다. ‘절대 이성’이라는 허울 좋은 겉포장을 말이다.
시간 여행을 끝내고 다시 1725년의 프랑스로 돌아온 볼테르는 쉴리 공작에게 또 한 번의 시간 여행을 제안한다. 1725년으로의 시간 여행을 말이다. 세 번의 시간 여행을 통해 볼테르가 깨달은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동과 권력이 없는 말과 이성은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맞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 뒤, 볼테르는 영국과 전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희곡과 저작을 발표하고 영국의 사상과 제도를 프랑스에 소개, 프랑스 계몽 사상의 아버지가 된다.
18세기 계몽주의는 근대 과학을 탄생시킨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 어느 때보다도 넓은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되는 주옥 같은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뉴턴의 만유 인력에 대한 정리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등의 이론이 나온 것도 이 시대였다. 그러나, 정작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 현대 과학은 인간의 이성이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19세기 말엽, 프로이트가 인간이 무의식에 의해 지배된다는 이론을 내놓은 이후, 최근의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파생한 ‘이성’이 그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그를 증명이나 하듯, 볼테르가 살던 18세기나 지금이나 사회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모든 나라가 헌법을 정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아직도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과 빈부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과연 볼테르와 쉴리 공작이 2008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면, 볼테르는 지금도 이성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며 인간 이성의 존재가 증명되었다면서 기뻐할까? 그 전에, 과연 우리 인간은 ‘이성’이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 by | 2008/07/07 09:36 | 서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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